노래 이야기
지난 4월 KBS 가요무대를 통해서 오랜만에 명국환 선생님의 얼굴을 뵐 수 있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아리조나 카우보이'의 주인공 명국환 선생님.
1957년 실시한 가수 인기투표에서는 현인 선생님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대스타였습니다. 명국환 선생님에 이어 3위가 남인수 선생님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시겠지요?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1950년대는 전쟁 이후의 2세대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손인호, 송민도, 김용만, 백설희 선생님 등 데뷔 년도는 달랐지만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선배님들이 가요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가셨지요. 그 중 한 분인 명국환 선생님은 1954년 '백마야 우지마라'라는 곡으로 데뷔하신 후 '아리조나 카우보이', '학도가', '희망가', '방랑시인 김삿갓'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셨습니다. 일부 기록에는 1956년에 데뷔하셨다고 표기되어 있지만, '방랑시인 김삿갓'이 1955년 발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1954년이 맞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1933년 1월 9일 황해도 연안군에서 출생하신 명국환 선생님은 1.4후퇴 때 18세의 나이로 가족들과 함께 월남하여 '켈로(KLO)부대'라고 알려진 북파공작원(HID)에서 정훈공작대원으로 복무하게 됩니다. 군 위문대였지만 부대의 특성상 계급장도 없는 힘든 군생활을 보내야 했고, 휴전이 되고 위문대가 해체되면서 서울로 돌아옵니다. 이후 서울재향군인회가 주최한 콩쿨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손기성 단장이 이끄는 샛별악극단에 입단하고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샛별악극단에서 만난 가수이자 배우인 나애심 선생님의 소개로 오빠인 작곡가 전오승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는데 이후 두분은 작곡가와 가수로서 명콤비를 이루어 활약하게 되지요.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방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개나리 봇짐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
팔도 강산 타향살이 몇몇해던가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김삿갓'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조선 후기 순조 때인 18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당시는 부정부패가 판을 치던 시기였습니다. 세금을 내고 나면 먹을 것이 없었고, 관직을 얻으려면 뇌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지요. 참다 못한 농민들이 난을 일으키고 평안도를 중심으로 봉기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홍경래의 난' 입니다. 반란 자체는 실패로 끝나게 되지만, 농민들이 힘을 모아 잘못된 것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로 남게 되는 사건입니다.
농민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김익순이라는 인물은 봉기군에 투항하게 되는데, 김익순은 오늘 노래의 주인공인 '김삿갓' 김병연의 친할아버지였습니다. 1811년 당시 김병연은 겨우 5살이었는데 조부가 반역죄를 저질렀으니 멸족을 당해 일가족이 모두 죽게 될 것은 당연지사였고, 하인의 도움을 받아 황해도로 도피해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이 후에 멸족에서 폐족(廢族)으로 죄가 감형되는데, 일가족을 모두 죽이는 멸족(滅族)과는 달리 폐족은 가족들이 벼슬을 할 수 없는 형벌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경기도 남양주에서 어머니와 재회하게 된 김병연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김병연이 20세가 되던 해인 1826년, 그는 과거에서 장원급제하게 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날의 시험 문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의 죄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었지요. 어렸을 적 일이라 자신의 조부가 김익순인 것을 몰랐던 그는 '한번 죽은 것으로는 부족하니 만번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신랄한 비판을 써내려갔습니다.
급제 후 뒤늦게 가정사에 대해 듣게 된 김병연은 큰 충격에 빠지고 스스로를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겨 큰 삿갓을 쓰고 방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때가 20대 초반이었고 이 후 죽기 전까지 35년의 세월 동안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녔다고 합니다.
'김삿갓'은 방랑 생활을 하며 재치있는 글솜씨로 천여편에 달하는 풍자시를 남겼는데요. 그의 유적이 있는 강원도 영월군에는 '김삿갓면'이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더라도 가사의 내용만으로 김삿갓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요. 당시에는 역사 속의 특정 인물을 소재로 노래를 발표하는 일이 흔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랑시인 김삿갓'은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후에도 '김삿갓'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많은 노래, 영화, 소설 등이 발표되면서 우리에게는 무척 친숙한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지요.
불행히도 이 노래는 일본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1965년에 금지곡으로 지정됩니다. "아사타로즈키요(淺太郞月夜)"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상당 부분이 흡사하다고 느낄 수가 있는데요. 1987년 많은 금지곡이 해금될 때에도 이 노래는 불명예를 씻지 못하고 해금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고 있는 명국환 선생님의 최근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생존해 계시는 몇 안되는 원로 가수로서 힘든 생활 중에도 가요무대에 출연하시는 등, 음악에 대한 멈추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노래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노래에 대한 평가보다는 역사의 일부분이 되어 다음 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또한 86세의 고령에도 쉬지 않고 노래하시는 명국환 선생님께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고 멋진 모습 보여주시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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