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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군 역사를 간직한 소중하고 정겨운 성계리마을 풍경을 봅니다.
눈부신 신록의 계절,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고인돌위에 성혈은 오늘 첨 배웁니다. 설명을 안듣고 가면 그냥 구멍 송송뚫린 바위라고 생각했을 듯요. ㅎㅎ 저렇게 민가에 고인돌이 있다는것도 너무 신기한 풍경입니다.
Ответить이 마을 사람인데요. 고인돌인 근거로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 있다 라는 것을 들고 계신는데요. 마을 형성이 300년전으로 올라갑니다. 그 이전에 여기는 산비알이었을 겁니다. 우리 마을도 산비알의 일부입니다. 마을 안에 솔뫼당(동네에서는 솔모단으로 불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솔모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이 있습니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 정도로 이해해 주십시오. 지금도 마당을 파면 전부 돌입니다. 앞산이 어래산입니다. 석산으로 한때는 석산개발업자가 탐을 내기도 한 지역이지요. 바위를 어디서 옮겨 온 것이 아니라 제 생각에는 빙하기 이후 어름이 녹으면서 어떤 현상으로 산기슭으로 내려왔던가 원래부터 그자리에 있었다고 봅니다. 6.25 때에는 처절한 전투지역이었습니다. 동산댁고인돌 굄돌이 있다고 했습니다. 돌이 많다보니 자연적으로 굄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밑의 굄돌로 보이는 돌도 담을 새로 쌓으면서 나온 돌을 거기에 붙여 놓은 것입니다. 그집은 저의 큰집입니다. 대문을 새로 내면서 망치로 많이 깨어버린 흔적이 많습니다. 1/4은 떨어져 나갔을 겁니다. 이걸두고 바위를 자른 흔적이라고 하는 분도 계십디다. 족장의 무덤이었다면 칠성리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에서 그 시대의 부장품이 나왔어야 하는데 수십개의 바위에서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무덤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구요. 노당재 바위 밑은 소먹이면서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놀았던 곳입니다. 거기서 나온 것은 6.25 때 탄피정도 였습니다. 저희가 어릴때는 노당재로 했습니다. 어느날 칠성재로 이야기 되더군요. 이점도 노당재 바위의 성격을 이해하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합니다. 고인돌 가능성을 따지자면 노당재바위가 제일 높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이러한 것으로 볼 때 제는 고인돌일 가능성을 없다고 봅니다. 두서없는 글입니다. 고인돌이면 좋겠지만 아닌 것을 알면서 가만이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몇자 적었습니다.
Ответить솔뫼당에 있는 성혈에 대하여 어떤 연유로 파인 것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바위 자체가 푸석푸석하여 잘 파이는 제질이구요. 만약 그 시대의 성혈이었다면 벌써 없어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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